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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그라드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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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최고사령부의 무능함 === 일반적으로 2차대전의 독일군은 전술, 작전술적 역량은 뛰어나지만 국가 전체를 움직이는 전략적 식견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보면 독일 최고사령부는 모든 분야에서 낙관론에 취해 제대로 된 의사결정을 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독일군의 큰 문제 중 하나는 정보 수집 능력 부족과 지나친 낙관론이었다. 본래 독일군은 6군과 4기갑군을 스탈린그라드 방향으로, 1 기갑군을 캅카스 지역의 유전으로 보낼 계획이었다. 4 기갑군은 보로네시를 탈환한 뒤 6군과 함께 진군하여 스탈린그라드 근처에 도달 후 1 기갑군을 따라 캅카스로 진군하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폰 보크 원수가 보로네시에 4 기갑군을 자의적으로 몇 일 더 잡아두는 일이 생긴다. 독일 6 군이 소모전을 겪으면서 돈 강 만곡부를 돌파했음을 고려하면, 이는 매우 큰 실책이었다. 소련군 방어선이 완성되기 전에 포위섬멸할 기회를 잃은 것이다. 돈 강 만곡부의 대규모 소련군을 파악했다면, 사령부가 개입하여 빠르게 기동부대를 이동시켜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다. 이후에도 의사결정은 끊임없이 오락가락했다. 독일군은 돈 강 전투에서 소련군이 패주한다는 낙관론에 사로잡혀 4 기갑군을 스탈린그라드가 방면을 거치지 않고 캅카스로 바로 진군시키는 것으로 계획을 바꾸었다가, 6군이 62군과 64군과의 소모전으로 진군이 늦어지자 다시 4 기갑군을 스탈린그라드 방향인 북동쪽으로 진군시켰다. 독일군이 제대로 된 정보수집을 했거나, 최소한 '전선의 상황이 어렵다'는 파울루스의 의견을 경청했다면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로스토프의 교통망은 크게 교란되었고, 당시 1 기갑군 사령관 클라이스트는 결국 자신들의 진격만 늦어졌다고 격분하였다. 이와중에 호트의 4 기갑군은 소련군 남부 방어선을 한참 돌파하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성과를 내다가 간신히 스탈린그라드 남부로 진격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4기갑군은 보병군단이 부족한 작은 군사령부였고, 이로 인해 우익 방어선은 소수 루마니아군이 맡아야 했고 매우 얇아지게 된다. 독일군의 소련군 과소평가는 계속되었다. 8월, 파울루스는 예하의 14기갑군단을 스탈린그라드 북쪽으로 진군시켜 스탈린그라드를 반포위하는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포위망 바깥의 소련군은 독일군의 예상 이상으로 매우 강력했고, 우라누스 작전 시작 순간까지도 끊임없이 14기갑군단을 공격해 소모시켰다. 그래서 14기갑군단이 돈 강에 도달한 이후 파울루스는 제대로 14기갑군단 기동전력을 사용할 수 없었고, 이로 인해 우라누스 작전의 진의를 파악했을때도 6군은 제대로 된 기동전력이 아닌 전투단만을 후방으로 보낼 수 있었다. 독일군이 속전속결이 불가능한 상황임을 일찍 깨닫고 보병전력을 보강하여 스탈린그라드 북쪽을 방어했다면, 파울루스는 충분한 기동부대를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렵게 스탈린그라드 시가지에 도착해서도 계속 문제가 생겼다. 할더는 히틀러에게 2주 정도면 시가지를 점령할 수 있다고 보고하였지만, 파울루스는 현재 6군의 누더기 보병사단으로는 시가지 점령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보고하였다. 결국 파울루스가 옳았고, 6군에 증원 병력을 보내야 했다. 문제는 최고사령부 레벨의 예비 부대가 없어, 6군 보병사단 중 돈 만곡부를 지키던 부대와 4 기갑군 예하 기동 부대를 시가지에 증원했다는 것이다. 이 시점 소련군은 돈 강 만곡부에 우라누스 작전에 사용할 전력을 집결시키기 시작했다. 독일 최고 사령부는 이 위험징후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했다. 4 기갑군 소속의 기갑사단 뿐만 아니라 군 직할 돌격포여단 등 수많은 기동전력이 시가전으로 손실되었다. 루마니아 군이 대전차 전력 부족으로 돈 강이라는 자연 장애물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와해되었음을 고려하면 어마어마한 실책이었다. 이 상황에도 총참모장 할더는 돈 강 만곡부는 조용하다는 등, 현실과 괴리된 기록을 남기기도 하였다. 최고 사령부가 이 정도이니 파울루스가 자신의 자원만으로 전투지경선 바깥에서 시작될 대참사를 미리 알 방법은 없었다. 상위부대인 B 집단군 사령부도 파울루스에게 큰 도움을 주지 못했다. B 집단군은 헝가리, 이탈리아, 루마니아, 독일 4개 언어를 사용하는 다국적 부대였다. 이런 상황에 담당 전선도 매우 방대해 보로네시부터 돈 만곡부를 거쳐 스탈린그라드까지 3개 방향으로 소련군 4개 전선군 사령부와 접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니 B 집단군이 제대로 된 지휘통제와 참모 업무를 하는 것은 어려웠다. 실제로 B 집단군은 우라누스 작전 발동 후 진의를 가장 빨리 파악할 수 있는 야전 부대였음에도 우라누스 공세 첫 날 6 군에게 제대로 된 경고를 하지 못했다. 서쪽 포위를 막을 수 있떤 돈 강 만곡부에 있던 2개 기갑사단은 불확실한 지휘통제로 갈팡질팡하다가 큰 손실을 입고 밀려났다. 되려 파울루스가 급조한 전투단이 더 빨리 돈 강의 핵심지역인 칼라치 근처에 도달했다. 전투단이 단 몇 시간 차이로 칼라치를 빼앗겼음을 생각하면 돈 강 만곡부의 루마니아군이 지연전을 성공하거나, 기동 예비가 조금만 더 잘 활용되었더라도 포위망이 4일만에 닫히는 대참사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독일군의 전략적 역량 이외에도 다른 부분에도 큰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는 전투였다. 되려 파울루스는 이런 혼란스런 상황에서도 보통 이상의 성과를 낸 지휘관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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